판터에 대한 서방 연합군의 잘못된 평가1943년 쿠르스크 전투에서 승리한 소련은 자군이 파괴하거나 독일군이 방기한 다수의 판터를 수거해 수복하는 데 성공했다. 1943년 가을 소련군은 이 수복된 판터 초기형 전차들로 수많은 시험을 하였고, 그 정보가 당시 소련을 방문한 서방 연합군 정보부에 전해졌다. 소련을 직접 방문해 그 자료들을 직접 전해받은 영연방군 및 미군 장교들에 의해 판터에 관한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판터에 관한 최초의 기술적 공식 보고서는 서방 연합군 정보부에 의해 1943년 9월 26일 작성됐고, 이후 다수의 관련 보고서가 서방 연합군 사령부에 제출되었다. 소련군은 충분한 기술적 자료를 제공했지만, 일단 그 대상이 잘못되었고 서방 연합군 정보부가 이 자료를 분석하고 판터에 관한 평가를 내리는 데 오류가 발생했다.
소련군이 당시 수거한 판터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던 판터 D형이었다. 쿠르스크 전투 당시 카를 데커 대령이 지휘했던 독일 제10 독립 기갑 여단에 배속된 이 판터 D형은 초기 결함들로 인해 집결지로 이동하던 중에 유폭하는 등 신뢰성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이러한 판터의 문제점은 소련군이 제공한 기술 보고서에 반영이 돼 있었다. (판터 초기형의 문제점과 전과에 대해서는 치타델레에서의 판터 전차를 참조하라.)
<출전: Thomas L. Jentz, Germany's Panther Tank: The Quest for Combat Supremacy, 132p>
* 주의: 7월 8일 판터 가동대수는 0대가 아니라, 독일 제10 기갑 여단의 보고서가 누락된 탓에 정보 자체가 존재하기 않기 때문에 부득이 0으로 표시했다. 따라서 실제로는 불명이다.
치타델레 작전 개시 당일인 1943년 7월 5일 독일 제10 기갑 여단의 판터 D형의 가동수는 184대였지만, 이틀 후인 7월 7일 40대로 격감했고, 7월 9일에는 16대까지 떨어졌다. 이 중 태반이 기계적 손실로 독일 측 공세 종료일인 7월 16일 판터 D형의 가동대수는 43대에 지나지 않았다. 7월 5일부터 7월 16일까지 독일 제10 기갑 여단의 평균 판터 가동대수는 55.72대로 작전 초기를 제외하면 실제 가동율은 30%가 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1943년 8월부터 12월까지 평균 200대 전후로 비교적 소수의 판터를 운용했다. 이는 7월과 큰 차이가 없는 수치였으며, 8월~12월 판터 가동율도 쿠르스크 전투 당시처럼 매우 낮았다. 이에 따라 서방 연합군 정보부는 판터 D형을 '결함 전차'로 평가하고 티거처럼 독립 전차 대대나 독립 기갑 여단에 배속돼 소수만이 전선에 투입될 것이라 판단했다. 이러한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들어 실제로 이탈리아 전선에 모습을 드러낸 판터 전차는 소수였다. 심화되는 편견과 그 대가1943년 8월에 판터 71대를 장비한 LSSAH 사단이 북부 이탈리아로 이동했지만, 위장 야전군인 제1 SS 기갑군(제2 SS 기갑 군단의 위장 명칭)에 속해 파르티잔 토벌 임무와 이탈리아군 무장해제 임무만을 수행했다. 그리고 서방 연합군과 일체 교전없이 동년 11월 제48 기갑 군단에 전속돼 동부전선으로 돌아왔다. 이후 독일 제69 특수 기갑 연대 소속의 제4 기갑 연대 1대대가 판터 76대를 장비하고 1944년 2월에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다. 독일 제69 기갑 연대는 소방대로써 편성된 특수목적부대로 1944년 2월 당시 4개의 전차 대대와 1개 중전차엽병 중대로 구성돼 있었다.
독일 제69 기갑 연대가 서방 연합군을 지중해로 쓸어넣기 위해 이탈리아 전선에 오기 전까지 미군은 판터의 그림자조차 구경하지 못했던 것이다.
서방 연합군 정보부는 결함 전차인 판터 D형을 독일군이 전차 부대의 근간으로 삼을 리 없다고 판단했고, 이에 관한 보고서는 당연히 미국 지상군 사령관인 레슬리 맥네어 중장에게도 보내졌다. 당시 서방 연합군 정보부는 독일 기갑 사단의 편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가 제기된 것은 '정보 보고서 47번'이 올라온 1944년 2월 22일이었다. 이 보고서에 독일 기갑 사단의 1944년 편제에 판터가 1개 대대를 차지하고 있다는 명확한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대참사에 대한 암시가 포함된 이 보고서를 미군 고위 지휘관들은 무시했다.
미 유럽 원정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 대장, 미 지상군 사령관 맥네어 중장, 미 제12 집단군 임시 사령관 겸 제1군 사령관 오마 브래들리 중장 등 미군 수뇌 중 어느 누구도 이 보고서에 주목하지 않았다. 서방 연합군 정보부가 1944년 초에 자신들의 실수를 만회했지만, 누구 하나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높으신 분들'이 이 보고서에 주목하게 된 것은 노르망디 상륙 이후로 셔먼이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판터에게 고장난 압력밥솥처럼 터져나간 이후이다. 미군은 1944년 7월 21일부터 8월 20일까지 셔먼만 557대를 잃었다. 이는 당시 미군이 보유한 셔먼 중 21.8%를 차지하는 양이었다. 한 달의 전투 기간 동안 미국 유럽 원정군은 3개 기갑 사단 분의 셔먼을 완전손실했던 것이다.
노르망디에 투입된 미국 기갑 사단들은 건제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대량으로 셔먼을 손실했고(실제로는 건제를 유지했다. 이유는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막대한 예비 셔먼의 존재였다.), 노르망디 전투가 종료된 후 사단 내에서 중고 셔먼은 품귀 현상을 일으켰다. 전투가 종료된 후 대부분이 신품으로 교체돼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에 따라 숙련된 미국 전차병들 또한 신병으로 교체되었다. 아무도 두 거인을 비판할 수 없었다
"자네 말은 우리의 76이 이 판터들을 격파하지 못한다는 뜻인가? 이런, 나는 이 포가 이번 전쟁에서 죽여주는 포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브래들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 이게 75보다 낫긴 합니다만, 신형 탄두는 훨씬 작습니다. 이 탄두는 독일 전차의 (전면)장갑을 뚫지 못하지요."
아이크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투덜거렸다.
"왜 나는 항상 이런 문제에 대해서 뒤늦게 알게 되는 건가? 병기국에서는 나한테 75는 독일놈들이 가진 것은 모조리 잡을 수 있다고 했단 말이야. 지금은 자네로부터 76은 저 빌어먹을 것들을 박살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구만."
<출전>
브래들리 자서전, 322-323p 1951년판
이건 명백한 면피다. 늦긴 했지만 분명 서방 연합군 정보부는 노르망디 상륙 전에 경고했다. 독일이 자군의 기갑 사단에 판터를 대량으로 배치하고 있다고 말이다. 추가된 판터에 관한 기술적 보고서가 없었어도, 이는 독일군이 판터의 결함을 해결했다는 의미였고, 당연히 노르망디 상륙에 앞서 서방 연합군 최고 지휘관인 아이젠하워와 미군 최고위 야전 지휘관인 브래들리는 이 사안에 관해 심각하게 논의를 해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들은 병기국 탓을 하며 독일 전차의 강력함을 뒤늦게 알게 됐다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
브래들리 원수와 아이젠하워 원수
감히 누가 이 두 거인을 비판할 수 있었겠는가.
서방 연합군 정보부는 노르망디에서의 대참사를 예언했지만, 트로이의 몰락을 예언한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처럼 미군 수뇌부에게 무시당했다. 독일은 판터 D형의 초기 결함을 해결한 판터 A형을 1943년 8월부터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는 동년 9월부터 본격화되었다. 1943년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된 판터 A형과 이듬해 3월부터 생산된 판터 G형은 정밀도 및 관통력이 높은 주포와 강고한 정면 장갑으로 문자 그대로 셔먼을 유린했다.
1945년 3월 20일자 판터 쇼크에 관한 보고서는 셔먼 전차병들의 절규나 마찬가지로, 이들을 이러한 참극으로 밀어넣은 원흉 중 하나가 이 보고서의 마지막 수령자인 아이젠하워였다.
'판터 쇼크'는 독일 전차의 기술적 우위 이전에, 미군 수뇌부의 안일한 인식과 대처가 문제였던 것이다. 견인식 대전차포와 대전차 자주포 논란에서처럼 미군 수뇌부는 또다시 무능함을 드러냈다.
영연방군 또한 이러한 미군의 시각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대처는 달랐다. 영연방군은─비록 결과는 시원치 않았지만─기술적 격차를 메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고, 판터에 대응할 병기를 만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는 소련 또한 마찬가지로 쿠르스크 전투에서 자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전과를 거둔 판터에게 크나큰 위협을 느끼고 수많은 대응책을 강구했다.
─ 판터 쇼크에 대처하기 위한 영연방과 소련의 노력으로 이어짐
<참고문헌>Steven Zaloga, Armored Thunderbolt: The U.S. Army Sherman in World War II (Stackpole Books 2008)
Thomas L. Jentz, Germany's Panther Tank: The Quest for Combat Supremacy (Schiffer Publishing 1995)
Thomas L. Jentz, Panzertruppen 2: The Complete Guide to the Creation & Combat Employment of Germany's Tank Force 1943-1945 (Schiffer Publishing 2000)
Niklas Zettering, Kursk 1943: A Statistical Analysis (Frank Cass Publishers 2004)
Niklas Zetterling, Normandy 1944: German Military Organization, Combat Power and Organizational Effectiveness (J.J. Fedorowicz 2000)
Eric Lefévre, Panzers in Normandy: Then and Now (After the Battle Magazine 1999)
George F. Nafziger, GERMAN ORDER OF BATTLE IN WW II: panzers and artillery in World War II (London, Greenhill Books 1999)
Wilhelm Tieke, In the Firestorm of the Last Years of the War, II. SS-Panzerkorps with the 9. and 10. SS-Divisions "Hohenstaufen" and "Frundsberg" (Fedorowicz J.J. 1999)
Patrick Agte, Jochen Peiper: Commander, Panzerregiment Leibstandarte (Fedorowicz J.J.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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